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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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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진 질문 (1~5번)

 

 故 이병철회장이 생전에 질문하였다는 24가지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고뇌기에 한 두번쯤은 고민해보았을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전체 내용중 일부분인 5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함께 나누어봅니다.

 

   

1. 신(하느님)은 있는가 ?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는가 ?

  

   

☞ 전제 : 사람의 머리안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이성과 지혜로 헤아리고 형상화 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영-이다 (요4:24)

  ① 바람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바람이 일으키는 현상을 통해 바람  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자파를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전자파의 결과로 보여지거나 들려지는 TV, 라디오, 핸드폰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사물의 대상에 따라 인식하는 감각기관이 다릅니다

부드러움과 울퉁불퉁한 표면의 거칠은 정도는 촉각으로,

아름다운 꽃의 다양한 색깔은 시각으로,

향기로운 꽃의 냄새는 후각으로

우리 육체의 감각을 벗어나는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마음(영)으로만 인식이 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가슴을 열어서도 보여줄 수 없습니다. 다만, 겉으로 표현되어질 때만 마음이 어떠하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을 뿐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의 제한된 눈으로 켤코 볼 수 없는 거룩하시고 영화로운 존재입니다  (요1:18; 딤전1:17; 6:16; 요일4:12)

여름의 맑은 날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주에는 태양보다 수백만배나 더 밝은 광명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지극히 작은 것조차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하물며 이러한 것들을 창조하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대면하게 되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그대로 나타태실 경우, 살아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고자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인류 역사의 분기점이 되시는 예수는 역사적 실존이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가 어떠한 분이신지를 바로 알 때만이,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지며 대면할 수 있게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사9:6; 마1:23; 요1:1,14; 골2:9)

   

(3)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더라도 알아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와 상식안에 모든 사물과 우주를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우주도 담지 못하는 사람의 머리로 하나님을 형상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해야 할 것이라는 논리는 사람이 알아보고 이해하는 수준에 하나님을 담아보려는 형상화 작업일 뿐입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8,9)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며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과 능력을 보았던 제자들조차도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타나신 하나님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5)

   

이스라엘의 백성뿐아니라 종교지도자들조차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람으로 오실 하나님(메시아)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거절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날에 수많은 사람들 역시 사람으로 오셨던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생의 쾌락과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가느라 너무도 바쁜 나머지

하나님이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하나 하는 무감각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딤후3:4)

   

인생이 얼마나 짧습니까! 이 짧은 시간동안 누릴 것들을 위해 그토록 애쓰고 땀 흘리면서 참으로 중요한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다면 보물을 찾는 것보다 더한 열심으로 그분을 찾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b)

   

역사속의 모든 조상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설령 그분이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마음 없이 무관심한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2:30)

   

참으로 소중하신 인생의 보물중의 보물되신 하나님은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길 기뻐하십니다.

   

   

(4) 또 다른 문제는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심연의 장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사59:2; 마5:8)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의 태양을 가리우듯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 죄의 문제로부터 자유케 되기전 까지 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습니다. 죄로부터 자유케 된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것이며, 장차 올 세상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대하듯, 부부가 서로를 대하듯 하나님을 친밀하게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마5:8; 고전13:12; 계7:17)

   

   

(5) 지금도 여전히 보여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남겨진 몸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후3:3)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던져보았을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빌립도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질문을 스승에게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이 제시하진 답변은 주님 자신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아야만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로 인해 더더욱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메아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발을 담그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 직장, 가정, 교회 등에서 이해관계의 부딪힘과 관계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빛을 잃었고, 소금으로서의 맛을 상실해 버린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세상은 그리스도에 대해 희미해져 갑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보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들의 말과 표정, 행동의 열매들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며,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하신일과 하시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도록 신의식(신을 의식하는 마음)과 양심을 주셨으며(롬1:19),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셔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행17:27)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19)

   

   

   

2. 신은 우주를 만드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

  

 ☞ 전제 :  이것이 증명의 문제입니까!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양쪽 모두 실험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과학에서 이론이 법칙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해 확인이되고 확증이 되어져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실험실에서 증명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이것은 사람이 증명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지혜자의 영역을 열등한 존재가 증명해내고 밝혀낸 다는 자체가 모순일 것입니다.

   

다만, 사람에게 부여하신 이성을 통해 우리들 앞에 분명하게 드러난 증거들을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씩 살펴본다면 우주만물의 설계자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3:4)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20) 

   

훌륭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대한다면 감탄사 뿐 아니라

배후에 있는 예술가에게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만물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난 놀라운 질서와 아름다움을 살펴본다면

배후에 계신 예술가가 지혜와 능력에 있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알게 됩니다.

   

사거리의 간단한 신호등이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질서쳬계라 하더라도 달리는 자동차들의 사고를 방지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지적인 설계자들에 의해 고안된 작품인 것입니다. 이토록 작은 질서조차도 그러할진대 이것과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거대하고 복잡한 행성들의 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태양계의 행성들만 놓고 보더라도 저마다 자기 궤도를 정확히 그리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의 길을 가고 있도록 붙들어주는 질서는 이러한 질서를 조성한 자가 사람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신 분임을 증명해 주는 증거들입니다.

   

(2) 드러난 법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열역학제2법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물이 점점 낡아지며 노후해가고 무질서해져 간다는 증명된 과학(법칙)입니다. 이것은 법칙이고, 진화는 이론일 뿐인데 폭발로 발생한 무질서한 우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이토록 질서 정연함을 갖추었다는 진화론의 모순은 진화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이 이론을 고수하고 주장하는 분들의 견고한 신앙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진화론이 증명되어지지 않은 하나의 가설임에도 이것을 마치 과학법칙이나 사실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교육기관과 각종 매체를 통해 진화론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교육(주입)받았기 때문입니다. 의심없이 수용된다는 의미에 있어서 진화론은 일종의 신앙(맹신)입니다.

   

   

3. 생믈학자들도 인간도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 전제 : 진화는 기원에 대한 학문이 아니며 과정에 대한 이론일 뿐입니다.

   

진화론은 생명체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업그레이드(진보) 되어져서 결국에는 최고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이론(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에서 도를 벗어나 맹목적인 신앙으로까지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증명이 되어지지도 않은 이론을 버젓이 과학처럼 각종 교육기관이나 매체에서 교육시켜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1) 중간 고리(화석)의 부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① 수많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오랜 세월을 걸쳐 진화되었다면 고고학의 발달과 광범위한 진화론자들의 열정적인 발굴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간(고리)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진화론의 전제가 잘 못되었음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② 고고학의 발달로 세계 도처에서 발굴되고 있는 고대의 화석과 오늘날에 보여지는 증거들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본다면, 모든 생물들이 각 종류대로 갑자기 발생(출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모든 생명체가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말씀을 지지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이성으로는 인정하지만 본성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과)라면 사람들이 원숭이를 자신들의 조상대로 예우를 갖추지 않고 개나 고양이와 다름없이 취급하고 있는 현실과, 자신을 원숭이로 취급하는 대우를 받을 경우 비난과 욕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 비록, 이성으로는 그렇게 고집하고 싶지만, 본성에서는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셨기에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무엇이 과학적 이성에 일치하는가!

자연계에서 발견되어지고 검증되어진 법칙(열역학제2법칙 등)들과 이성적인 상식에 비추어보더라도 생물이나 사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보하고 노후해져 무질서한 상태로 진행되어지지, 단순한 생명체가 점점 복잡한 형태로 발전한다든가 무질서한 상태가 점점 질서정연하게 자리매김한다는 사실은 소설보다 더 심한 시나리오입니다.

   

(4) 물질이 진보하여 영혼이 만들어 질 수 있는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로봇기술이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무리 뛰어 난 성능을 지닌 로봇이라도 설계자(사람)가 만들어준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것일뿐입니다.  로봇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들  마음이 만들어 질 수 있겠습니까. 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문명인들조차 로봇에 마음을 부여해주지 못하거늘 무생물에  수많은 시간과 우연을 더해서 요리한다면 사람의 마음과 정신(영혼)이 만들어 질 수 있겠습니까!

   

   

4.언젠가 생명의 합성,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55:9)

   

성경이 과학책은 아니지만 성경에는 과학적인 사실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고대에 쓰여진 글들임에도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와서야 알 수 있었던 많은 사실들이 놀랍게 도처에 담겨져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의 지구관은 코끼리나 거인 등이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고대 기록된 성경에서는 이미 지구가 허공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으며, 바람에 무게가 있다는 사실, 바닷속 깊이 길이 있다는 사실 등이 밝혀진지 얼마 되지 않지만, 고대에 기록된 성경에는 이미 이러한 사실들이 언급되어지고 있습니다.

   

고생물학, 유전학, 천문학, 지질학 등 많은 과학분야에서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람과 만물안에 담겨진 질서와 조화의 신비로움 앞으로 인도해 줄 뿐입니다. 거대한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순환이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극소립자의 세계에서도 동일한 질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설계자의 능력과 존재앞에 경외감을 갖게 합니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는가 ?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렘3:33)

 

 ① 하나님은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 안에 담겨져 있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축복과 보화를 나누며 상속받는 존재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족처럼, 연인처럼 사귐의 대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을 로봇처럼 만드신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형상 - 지(지식), 정(감정), 의(의지) -대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이 자유의지로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고 순종함으로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롭듯이, 나뭇가지가 나무에만 붙어있어도 저절로 푸른 잎사귀와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하나님안에서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준비해주시고 조성해 주신 아름다운 낙원에 감사치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거절한 채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살아가고자,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죄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렘2:13)

   

이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사망이 들어왔으며,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서 태어나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처럼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이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버리고 떠난 것이 그들에게 자유가 될 것 같았지만

실상은 생명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유복한 아버지를 떠난 탕자처럼,

인생은 하늘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떠나 스스로 고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스스로 먹고 사는 일에 땀 흘리며 수고하고 고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상에는 고통, 불행, 죽음, 눈물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기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며 시기하고 다투는 것입니다.

가족간에, 이웃간에, 민족과 나라간에 싸움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자신이 항상 옳다는 자신의 기준 때문입니다. 나는 옳고 네가 틀리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위해서는 상대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 인류의 첫 조상은 죄를 수입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 죄를 응용하며, 가공해서 더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뉴스를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테러와 전쟁과 굶주림과 많은 전염병 등이 사람들의 욕심과 죄로 말미암았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고난과 질병과 어려움들이 이 자체에서 끝나버린다면 불행이겠지만, 이러한 고통과 어려움은 여러 가지 유익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몸의 연약한 한계로 인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통로로서의 역할은 가장 큰 유익입니다. 사람의 몸을 불사신처럼 강하게 만들어 주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결코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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