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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소식-칼럼: 사마리아에 있는 빌립(행 8:5~25) - 침례

들풀도(field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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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에 있는 빌립(행 8:5~25) - 침례


표적과 기사들과 기적들은 당분간 존속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믿음을 통해 확립되자 이와같은 하나님의 능력의 외부적 표현은 그쳤습니다. 오늘날 시몬과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구원받은 자들보다 자기에게로 돌아 오는 개종자들을 얻기 위해 그와같은 표적들을 모조하려고 애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 기적들이 끝났음을 강조합니다. 어중간한 기적들과 절반쯤 회복되는 것은 그 당시에도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아니었으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한” 결과는 이중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믿었으며, 둘째는 그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행8:12). 빌립은 병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16절이 이 사실을 강조합 니다.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다.” 


 여기 나타난,  하나님께서 주신 순서가 곧 남녀가 믿고 그 다음에 침례를 받은 것은 오늘날 기독교계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전통으로 인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침례란 주제는 우리에게 인간들은 함께 적절히 결합되어 있는 것을 나누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문제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19:6). 


 구원과 침례와 성령님을 받는것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다른 순서를 채택합 니다. 어떤 이들은 유아들이 구원의 멧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전에 그들에게 침례를 줍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심지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성령님을 줄 수 있다고 상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침례의 필요성을 믿지 않습니다. 


믿는 자가 침례 를 받듣 안받든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논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과 침례를 분리하는 것은 이혼과 마찬가지로 나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혼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을 한 쪽으로 제껴 놓기 때문입니다. 


 결혼 관계는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며 그분은 이 교회를 얻기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엡 5:25). 침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로마서 6장 4~5절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누가 침례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한쪽에다 그리스도의 죽음 및 부활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제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중 략~~~


침례의 목표는 회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전처럼 살기를 꾀하면서 회개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 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고 가지 아니한” 아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마21:29).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첫 요구는 침례에 의해 그 변화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새 생명을 가졌음을 눈에 보이게끔 나타내는 첫 표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혹 물로 침례를 받지 않고서도 오직 품행에 의해서 회개를 나타내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분의 죽으심이 없는 활동입니다.

 베드로의 권면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인 것이었습니다. 3000명이 기쁘게 말씀을 받아들였고 복음연설은 침례로 귀결되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진실성을 먼저 점검하기위해 기다리는 경향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합당한 상황하에서 이 지혜가 옳으냐 그르냐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베드로가 전도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조금 전까지도 그리스도를 못박았다는 비난을 받았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기 전에 먼저 그들이 가장 큰 죄에서 돌아섰음을 확인하려고 기다렸을까요? 사실 그들의 침례는 변화된 삶의 증거가 아니라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들의 침례는 교회생활의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동일한 일이 본장에서 발생합니다. 사도행전 8장 12절에서 사마리아인들도 믿고 나서 즉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은 베드로가 와서 침례를 주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침례를 주려는 자신의 결정을 확실히 할 목적으로도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시몬의 품행이 그가 진짜임을 보여 줄 때 까지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8장 36절에서는 우리는 침례를 받고자 하는 그 내시의 관심에 관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장황한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빌립은 이사야 53장에서 시작한 후 곧장 침례의 주제로 옮아갔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내시가 침례를 받은 후 어떤 보살핌을 받았다는 언급도 없습니다.        
~~~중 략~~~

 이 모두가 다 다만 한 가지 동일한 사실, 곧 믿음이 침례에 선행한다는 것, 

 그리고 긴 시험 기간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아들이 침례를 받은 사례도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강해에서(by  존 헤딩, 전도출판사)


저자 소개

존 헤딩은 재학시절 중 마지막 해인 1943년에 영국 놀위치에서 거듭났습니다. 그후로는 케임브리지, 런던, 사우댐턴을 거쳐 에버리스트위드와 웨일즈에 거주했습니다.그는 철학박사(켐브리지대학-Ph.D), 이학박사(Sc.D)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웨일즈와 에버리스트위드의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기술서적과 논문들을 썼습니다. 
또한 헤딩교수는 지역모임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그는 [사도행전] [고린도전후서] [누가복음] [역대상하] 등의 중요한 성경 강해서를 썼습니다.    그의 계시록에 관한 책은 [현재에서 영원까지-From Now to Eternity]라고 불립니다.    그는 또한 [귀중한 씨앗- Precious Seed 誌)의 편집자이고, <실천적인 교회진리와 성경진리의 보화>의 공동편집자입니다.
-책에 있는 저자소개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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