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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소식-칼럼: 히브리어에서 "배운다"는 의미

들풀도(field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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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에서 "배운다"는 의미


히브리어에서는 ‘배우다’(히‘라마드’)는 말과 ‘가르친다’는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배우는 자만이 가르칠 수 있고, 가르치려 하는 자는 배우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마치 히브리 어근에서 나온 듯 싶습니다.
 
사람의 악습중에 하나는 먼저 된 자들이 나중된 자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함께 행하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현인들의 말처럼, 배움에는 제한을 두어서 안됩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자신 보다 늦게 신앙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향해 감히 나를 가르치냐는 생각이나 마음을 먹는 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완악한 태도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자유자재로 다듬어서 자기가 원하는 그릇을 만들어 내듯이 주님은 우리를 다듬어서 당신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가십니다. 이 과정에 있어서 주의 손가락이 우리를 만질 때, 딱딱하게 반응하는 것이 완악한 마음입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그리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듭 해서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딱딱하게) 하였습니다.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마음이 위험하지만, 이만하면 되었다는 마음 역시 위험합니다. 주의 기름부으심이 우리에게 있기에 더 이상은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 순간 하나님의 선지자들 앞에 귀먹어리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의 귀와 눈은 닫혀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어린아이와 같이 부족해 보이는, 신앙의 출발이 한 참 늦거나, 나이가 많이 어린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자신에게 들려지는 교훈과 권면의 말씀에 대해 평가절하 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다루시기에 부드럽지 않고 완악한(딱딱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입술을 통해 들려지는 교훈을 무시한다면, 유대의 지도자들처럼 그리스도께 꾸짖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16)
 
또 한 가지의 걱정스러운 풍조는
기록된 말씀을 머리에 담는 것을 지식이라 가벼이 여기는 풍토입니다.
 
머리에만 담긴 지식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 유익을 주기보다는 해를 입힐 위험요소가 잔존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말씀을 우리의 지성 가운데 소화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이 마음의 토양에 뿌리를 뻗고 훗날 열매를 맺는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주신 이성으로 이해되고 흡수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여 주신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다행히도 하나님은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변개할 수 없는 기록된 말씀으로 당신과 당신의 기쁘신 뜻을 나타내 주십니다.
 
이것이 저희가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알 수 있으며, 순종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잠 16:20)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이십니다. 심겨진 말씀에 때로는 거슬리는 대상이나 열악한 환경이라는 좋은 거름이 뿌려져서 생명의 말씀이 영혼 깊숙이 뿌리내리도록 도움을 줍니다. 폭풍과 비바람, 뜨거운 햇볕과 같은 고난의 거름을 통해서 말씀의 뿌리가 우리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사울과 다윗의 출발은 같았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임했고, 선택과 기름부으심을 통해 왕이 되었습니다. 유일하게 빠진 것이 있다면 사울은 인스턴트 음식처럼 바로 식탁에 차려져 나왔고, 다윗은 밀을 까부스고, 반죽으로 주물러댄 후에, 오래 숙성시키고 나서야 음식으로 준비되어져 식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의 시간, 어둠의 새벽시간이 다윗 안에 있는 사울을 죽일 수 있었고, 그 후에야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으로,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성도로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져 가지가 자라나고 잎이 난후에 열매를 맺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지성)에 먼저 말씀을 주시고, 고난의 어두운 시간을 통해 당신의 말씀이 마음 깊숙이 뿌리 내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에서 조차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 119편)
 
주의 말씀의 강가에 우리의 뿌리를 내리는 것은 계절마다 열매를 맺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비결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모든육체는 풀과같고 그 모든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성경말씀중에서)....당신은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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