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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2가지 원리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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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24-25)

 

성도의 삶과 교회의 견고한 건축은, 주님의 말씀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주의 말씀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가 형제들의 가장 큰  장점이요 특징이었습니다그러하기에 저희는 만찬을 나누며, 침례를 베풀고 너울을 쓰며.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말씀과 말씀의 원리를 유심히 살펴보아 - 마치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이 그러한가 유심히 살폈던 것처럼 -  말씀에서 떠나 있는 모습들이 보여진다면 이러한 누룩들은 회중가운데 전통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연연해 하지말고 가지쳐내야 하며, 오직 주의 말씀만이 저희의 유일한 삶의 규범과 소망이 되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자원함의 원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6:8, 10:7)

 

이 말씀은 1차적으로 이사야서의 말씀이지만

 

주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세상의 구원자로 천거 받기 전 천상(天上)에서 열린 회의 내용을 보여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를 호소하시며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호소하십니다. 그때에 스스로를 천거하시며 자원하신분은 이 땅에 오셔서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10) 고 확증해주심으로 주님 자신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원리를 통해 하늘에 속한 교회에는 동일한 교훈이 있습니다. 필요가 들려지고 보여지게 될 때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일어나고 그 이후에 보내심이 있다는 원리입니다. 세상의 조직에서는 필요가 보여지면 이 일은 누가 하고, 저 일은 누가 하는 임의 천거방식으로 조직이 운영되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자원함의 원리가 있습니다.

 

지시나 추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컴퓨터 용어로 최소사양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자원함의 원리가 권장사양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원리는 주님이 친히 보여주신 교훈뿐 아니라

 

믿음의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 : 이 말씀은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명하실 때  천거받던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주시고, 이 소원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각 사람에게 행하게 하십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살펴볼 때 섬기고자 하는 소원을 주신 영역이 있습니다. 귀하고 천한 것이 없으며, 경중을 가늠이 없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일이든지 주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도록 저희의 마음에 담아두신 그 자리입니다.

 

주께서 저희 마음에 두신 소원을 따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위해 행하는 자원함의 원리는 판단과 시기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역과 일로서 저희를 부르시기 전에

그보다 우선적인 주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일차적 소명이란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누군가(하나님)에게 부름받은 것이지,

무엇인가(어머니의 역할이나 정치나 교직)로나

어디엔가(도시 빈민가나 몽고)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차적인 여러 '소명들'(callings)이지

바로 그 '소명'(the calling)은 아니다.

 

이 구별은 두 가지 도전을 수반한다.

먼저는 그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확실히 하는 것이다."

 

'부르심'을 말할 때 생기는 전제조건은

'부르는 이'(the caller)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부르는 자가 없는 소명은 공허할 뿐이며

일 중독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나 어떤 곳으로 가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일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다른 어떤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먼저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것입니다.

소명(IVP), 오스 기니스

 

 

지상 명령전에 주님은 제자들을 당신께로 먼저 부르셨습니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최우선 순위의 부르심...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께로 나오고 또한 당신 안에 거하길 바라십니다. (1:17, 15:4)

 

주님과 누리는 살아있는 교제가운데 함께 있을 때만이 사랑의 강권하시는 자원함이 저희 마음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원함의 능력과 마음이 부족하다면 이는 함께 있음의 결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안에는 주 안에서 마음을 나누는 교제보다, 사역과 일을 항상 먼저 보려는 연약함이 가득합니다. 저 역시 일 중심적인 사람이라 이러한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일 1:3)


아들이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신 연합과 사귐안으로 저희를 또한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사귐 가운데 있는 자가 주님의 말을 할 것이요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동역의 원리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9-12)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친구라 하셨기에 친구관계는 나이와 능력과 신분을 초월합니다. 믿음안에서 친구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견고히 서는데 유리하며 유익합니다. 주님은 교회가 또한 잠언의 동역의 원리 - 두 사람과 삼겹줄의 관계 - 처럼 든든히 서길 원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

 

교회를 견고히 세우기 위해 주님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함으로 주 앞에 함께 서가는 동역의 원리를 성경 곳곳에서 보여주십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10:24)

 

함께 세워져 가는 동역의 원리가 간과되어질 때 교회는 견고히 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일방적인 가르침의 대상 - 형식적인 동역 - 이 아닌, 그가 내안에서 행하고 내가 그 안에서 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동역이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나갈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10, 1:1-2)


동역의 관계 역시 주님께서 친히 이루시고 본을 보여주신 바입니다.

 

이 교훈은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원리일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9:15, 6:7)

 

중대한 결정을 함에 있어 한 사람의 말로 확정하지 않도록 하신 것은 사람의 연약함에서 아들의 피값으로 사신 고귀하신 주님의 교회를 보호하시기위해 주신 안전장치입니다.

 

한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전하는 그리스도인들, 성령으로 시작한 믿음의 선배들이 법대로 경기하지 않아신앙의 여정에서 이탈해 버리고, 중도 탈락하는 모습들을 보고 듣게 될 때마다 왜 !!! 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메아리로 남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하신 것은 성경을 전하면서 성경의 원리를 간과하는 모순 때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 세워져야 했듯이 주님의 몸된 교회 역시 성경의 원리대로 건축되어질 때 만이 세월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고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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