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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소식-칼럼: 아브라함_ 하나님의 인내하심

들풀도(fieldgrass)
2009 0 0
 아브라함_ 하나님의 인내
 
 본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책망과 비난에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장면을 본다. 

  그것은 그가 불신앙의 세력 아래 들어가서 행동했기 때문이 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사람의 길과 인격에 참된 고귀성을 심어줄 수 없다.

 실로 우리는 천성적으로 고결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육의 고결성과 존경성은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들은 나쁜 기초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탈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고상한 도덕적 색채를 고취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뿐이다. 믿음은 살아 있는 능력으로 참된 도덕성의 유일한 근원인 하나님과 영혼을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해 주신 사람의 경우도 그들이 믿음의 길을 떠날 때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저급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역사 중 이 부분에서 그가 저지른 행위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흥미있고 가치 있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수년 동안 악한 것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은 그의 영혼 속에 무언가를 품은 채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만족할 만하고도 무조건적인 신뢰가 빠진 결과였다.

가령 사라 문제와 관련해서도,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었더라면 숨김이나 속임수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녀 주위를 감싸 모든 악을 피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주무시지도 않으며 보호해 주시는 행복한 사람들을 누가 해칠 수 있으랴?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자비를 통해 모든 문제의 근원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고백하고 심판했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했다. 이것이 행동해야 참된 길이다. 

 한 조각의 누룩이라도 빛 가운데로 끌고나와서 발로 밟기 전에는 진정한 축복과 능력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인내는 무궁무진하다. 하나님은 기다리실 수 있다. 그는 우리로 인해 참으신다. 그러나 그는 누룩이 그대로 있어 처리되지 않고 있는데도 최고의 축복과 능력의 경지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활동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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