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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소식-칼럼: 롯_ⓒ_ 소돔(창세기 19장)

들풀도(fieldgrass)
1926 0 0
 롯_ 소돔
 
롯이 소돔으로 옮겨갔을 때에 그는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적으로 실수를 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우리 귓전에도 지극히 엄숙한 음성으로서, 이 세상적인 정신에서 나온 최초의 행위에 우리가 어떻게 굴복하고 있는가를 깨닫도록 해 주는 음성이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 13:5)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이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인가? 당신의 빈곤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갈구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가? 헛된 욕망이 도피할 단 하나의 틈새도 당신의 환경 가운데는 없기 때문인가? 가진 것이 우리의 만족의 기초가 되기 때문인가? 이 모든 질문들이 가진 바를 족히 여기라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럼 무엇인가?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히 13:5하반절).  이 얼마나 복된 분깃인가! 롯이 여기에 만족했었다면 물이 잘 나오는 소돔 평지를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만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를 얻고자 한다면 본장에서 찾을 수 있다. 롯이 행복과 만족의 길에서 얻었다는 것이 고작 무엇인가? 진실로 아무것도 없다. 소돔 사람들이 그의 집을 에워싸고 부수며 들어오려고 할 때 롯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제안을 내세우 면서 그들을 달래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자기비대(自己肥大)를 위해 세상과 손잡은 사람은 슬픈 결과를 당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세상에 의해 유익을 얻을 수 없으며, 동시에 세상의 악함을 효과적으로 증거해 보일 수도 없다.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19장:9절)  결코 법관이 될 수 없다. 세상에서의 법관이 되는 참된 길은 바리새주의의 교만한 정신이 아니라 은혜의 도덕적 능력으로 세상과 떨어져 있는 데에 있다. 세상과 결탁하여 유익을 얻으면서 세상의 방법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헛된 일이다.  세상은 그러한 비난과 증거에는 아무런 비중도 두지 않는다. 롯이 사위들에게 한 증거도 역시 그러했다.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14절)

이제 막 심판받으려고 하는 그 곳에 우리의 지위, 우리의 분깃, 그리고 우리의 기쁨을 두면서 그 곳에 심판이 임박하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브라함이야말로 심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훨씬 더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는 심판 받을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소돔은 불꽃 가운데 있었지만, 마므레 낯선 객의 장막은 전혀 위험이 없었다. 오, 우리의 마음도 분명한 나그네 정신의 고귀한 열매를 보다 더 갈구함으로써, 불쌍한 롯과 같이 마지 못해 외세에 의해 세상에서부터 떠나면서도 자꾸 뒤에 미련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자와 같이 거룩하게 민첩하게 열심을 다해서 전진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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