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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는 작별 인사가 없는 곳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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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본향

 

 

 

J. C. 라일

 

 

“더럽게 하는 어떤 것이든지,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그 무엇이든지 절대로 그 곳에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오리라.”(계 21:27)

 

 

여러분, 본문에 묘사된 장소는 장차 나타나게 될 천국, 곧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이 마지막 주일을 천국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기 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대해 잠시 생각하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입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큰 위로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우리 가운데 사후에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지 궁금합니다. 천국은 준비된 장소입니다. 그곳에 살게 될 사람들은 성품이 모두 동일합니다. 또 그곳에 들어가는 문도 하나뿐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소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선한 소망과 나쁜 소망, 참된 소망과 거짓 소망, 산 소망과 죽은 소망, 의로운 자들의 소망과 사악한 자들의 소망, 성도들의 소망과 위선자들의 소망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소망, 곧 부끄럽지 않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살펴보고, 그것을 소망의 근거로 삼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길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천국에 관한 본문의 증언에 관심을 기울여 봅시다.

 

 

주님은 우리가 천국에 적합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성품 가운데는 복된 천국에 어울리는 요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어떤 삶을 살든지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각이 없는 헛된 공상에 불과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모든 희망을 잃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게 될 큰 날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소로서의 천국

 

 

천국은 장소입니다. 성경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진리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있도다.”고 말했습니다(히 4:9). 이 세상은 우리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안식처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사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다 해 보십시오. 돈과 집과 토지를 소유하고, 지식과 건강과 아름다운 외모를 취하고, 명예와 지위를 얻고, 많은 친구와 교제를 나누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등,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모두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누린다고 해도 세상에서는 안식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공허하고, 불만족스럽고,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실망스럽고, 헛되다며 영혼의 깊은 번뇌에 시달릴 것이 분명합니다. 영혼은 야위어 황폐해지고 마음을 갈증과 굶주림으로 견딜 수 없게 되어 세상은 안식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망하는 바가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가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비참한 자니라.”는 성경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는 슬픔과 고통과 근심과 수고와 시련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이 세상에는 사별과 이별과 불행과 단절과 분리와 애통함과 저주와 질병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엘리야조차도 이 세상의 삶이 너무나 고달픈 나머지 죽기를 구했을 정도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면 나는 비참한 상태로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어둡고, 차갑고, 황량한 무덤 저편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편이 훨씬 더 나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삶은 이 세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덤 저편에 영광스런 안식이 존재합니다. 이 세상은 다만 영원한 삶을 위한 훈련 장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무덤은 천국에 가는 도중에 잠시 지나는 간이역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나의 몸이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을 입게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허상이 아닌 실제입니다. 나는 천국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나의 실존만큼 확실합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의 거주자들을 생각하기 전에 잠시 이 문제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천국은 완전한 안식과 평화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이나 육신이나 마귀와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벗어 놓고, 성령의 검을 내려놓은 채 고요한 휴식을 취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경계심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해야 할 영적 원수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금식하거나 육신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땅에 속한 비천한 육신을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기도로 맞서 싸워야 할 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사악한 자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죄와 유혹이 없습니다. 천국의 문들은 에덴동산을 지키는 문들보다 더 견고합니다. 마귀는 그곳을 뚫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참으로 복된 안식의 장소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위로를 받으며 용기를 내십시오.

 

 

천국을 가면 믿음은 보는 것으로, 소망은 확실함으로, 기도는 찬양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시간입니다. 회초리를 맞으며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영원한 방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용기를 내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힘써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그 후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약속의 땅에서 모두 사라지고 편히 안식할 때가 찾아옵니다. 지금은 거친 폭풍우 속에서 이리저리 시달리지만, 나중에는 안전한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지금은 쟁기질을 하여 씨앗을 뿌려야 하지만, 나중에는 추수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힘써 수고하지만, 나중에는 대가를 받게 될 것이고, 지금은 싸움을 해야 하지만 나중에는 승리와 보상이 뒤따를 것이며, 지금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지만 나중에는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고, 지금은 광야를 여행하지만, 나중에는 본향에 도착할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계 14:13). 성경의 증언은 참됩니다. 또한 천국은 완전한 행복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매 다시는 죽음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도 없고, 다시는 고통도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음이라.”는 말씀에 표시하기 바랍니다(계 21:4). 대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분께서 승리로 사망을 삼키실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며, 자신의 백성에 대한 책망을 온 땅에 서 없애시리니, 이는 주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그 날에는 말하기를, 보라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이 분을 기다렸으니, 이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 분은 주님이시라, 우리가 이 분을 기다렸으니,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 할 것이라.”(사 25:8-9)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안식처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슬픔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세상에는 엉겅퀴와 가시나무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쓴잔을 마셔야 합니다. 인생의 슬픔은 사방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쉬는 한숨마다 온갖 슬픔이 묻어납니다. 우리의 육신이 고통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슬프고, 세상의 소유를 모두 잃어도 슬프고, 어려움과 시련을 당해도 슬프고,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아도 슬프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도 슬프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가고 우리 혼자 남아도 슬픕니다.

 

 

이밖에도 우리의 마음이 연약하고 부패한 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아도 슬프고, 복음을 위해 박해와 배척을 당해도 슬프고, 우리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믿기를 거부해도 슬픕니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그 어떤 슬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국에는 눈물이 없고, 질병이나 연약함이나 부패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관도 없고, 장례식도 없고, 무덤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슬픔으로 얼굴이 창백해질 일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일도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다시 듣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우리의 즐거움을 망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영혼에 상처를 주는 날카롭고 예리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욕망도 영원히 사라지고, 온통 조화와 사랑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과 비교하면 현재의 고난은 지극히 경미할 뿐입니다.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일에 불평을 일삼거나 믿음을 저버린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헛되고 덧없는 이 세상이 천국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우리 안에 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천국을 밝게 비추고, 어린 양도 빛을 환히 드리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자신의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참으로 그로 하여금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삼하 19:30).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성경의 증언은 신실하고 참된 언약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다면, 약간의 수고와 고통과 시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

 

 

이제 본문에 계시된 두 번째 진리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에 이야기한 대로, 천국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는 생각하기조차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나는 성경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할 따름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상처를 주거나 분노를 느끼게 한다 해도 그것은 나의 책임이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내가 전해야 할 말씀은 내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더럽게 하는 어떤 것이든지,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그 무엇이든지 절대로 그 곳에 들어오지 못하되”라고 말씀합니다. 매우 엄숙한 의미가 담긴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이 죄에 오염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깨끗함을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겉으로는 점잖게 보이지만 내면은 온통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세상만을 생각하고 세상을 위해 살 뿐,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세상의 근심, 세상의 정치, 세상의 사업, 세상의 기쁨, 세상의 물질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강조했던 야고보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우상을 들여앉혀 놓고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섬기며 숭배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높이며, 교만하고 자만심이 가득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좋아하고,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 데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들을 지으신 주님의 영광, 영예, 말씀, 사역 및 그분의 처소는 언제나 뒷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적 근심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여기며,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유하면 대개는 화를 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는 명예롭게 보입니다. 그들은 세상일에 지혜와 지식이 많고, 자신의 맡은 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의 눈에 더러운 자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더러운 것은 무엇이든 천국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둘째로 “가증한 일”은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죄를 지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마음의 욕망을 따라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간음이나 음행을 저지르는 자, 불결한 삶을 살아가는 자, 술과 음식을 탐하는 자, 신서 모독하거나 저주와 거짓말을 일삼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분열과 분노와 갈등과 질투와 싸움과 증오를 일삼으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욕에 이끌리는 대로 아무 일이나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행위를 적당히 눈감아주고, 그들을 가리켜 명랑하고, 사교성이 풍부하고, 자유롭고, 야성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회개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로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는 위선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거짓 신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마치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고, 꽹과리처럼 소리만 요란할 뿐, 속은 텅 빈 상태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다는 이름만 가졌을 뿐 죽은 자나 다름없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하지 않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습니다. 한마디로 말만 거창할 뿐 행동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스스로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들보다 더 훌륭한 기독교인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삶으로는 은혜를 부정하고 입으로는 구원의 믿음을 말하지만 믿음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구제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들은 형식주의를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신앙이 한낱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면서도 바리새인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습니다.

 

 

이런 신앙의 소유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경건한 척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신자나 다름없이 행동하며, 밖에서만 참 신앙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가정에서는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척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으며, 말로만 혼자 다 믿는 것처럼 떠들지만 마음에는 믿음이 없는 상태인 셈입니다. 한 마디로 그런 사람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무익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말세에는 온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목자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고, 친구와 가족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더러운 사람, 가증한 사람, 위선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엄밀히 살펴 자신의 실상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래야만 장차 다가올 주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아 말합니다. 더럽고 가증스럽고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국교회 신자든지 비국교회 신자든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그렇게 좋거든 한번 해 보십시오. 죄를 짓는 것이 좋으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살아 보십시오. 하지만 이 시간 엄숙히 경고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너무 가혹하다고 나를 탓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문밖으로 쫓겨나 “주님,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아무리 간청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러운 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시금 마지막으로 경고하건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을 행한다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사람들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는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문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간단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증오하며, 죄를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떠 올리면서 탄식하고 죄의 짐을 감당할 수 없어 몸부림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선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주님, 저는 참으로 부정한 사람입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구원사역을 깨닫고, 그분에게 영혼의 짐을 맡깁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전부로 삼습니다. 즉,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과 의롭다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그분의 지혜와 의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자신들의 죄값을 치르실 수 있고, 그리스도만이 자신들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기 위해 그분 앞에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가 하실 수 있다고 믿고, 그분만을 의지하여 완전한 평화를 얻습니다.

 

 

셋째, 성령으로 거듭나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새 사람을 입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새롭게 되었습니다. 새 마음과 새로운 본성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영적 결실을 맺음으로써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물론, 그들도 때로는 좌우로 치우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의 부족함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거룩한 삶을 향해 매진하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좀 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뜻에 복종하기를 원합니다.

 

 

이들이 바로 천국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한때는 그들도 속된 자와 가증스러운 자와 거짓말하는 자 못지않게 나쁜 행실을 일삼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생명책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때로 세상에서 경멸과 배척을 당하기도 하고, 이웃들 눈에 가난하고 비천하고 천박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써 영광스런 생명책에 이름이 올려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회적인 신분이나 국적이 다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났을 수도 있고,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와 믿음과 거듭남을 통해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무엇도 그들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여러분 자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운가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든 간에 영생의 확신이 없다면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수 없다면 어떻게 죽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천국은 지극히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모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곳, 그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천국의 빛이요 양식이요 공기이십니다. 그곳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천국의 즐거움이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천국의 일상입니다.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어떤 성도들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누구 곁에 앉고 싶으십니까? 대언자들과 사도들 중에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으십니까? 이 순간, 밖으로 뛰쳐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니 더 이상 그런 귀찮은 질문을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이 부르실 때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구미에 맞게 천국을 고치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천만 번 나을 것입니다. 죽기 전에 천국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죽었을 때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위를 바라보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거할 곳을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여러분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하고 계시는 영광스런 처소를 바라보십시오. 천국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장차 영광스런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책으로만 읽었던 옛 성인들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과 인내 때문에 우리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경건한 목자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왕좌 앞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보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이별이나 사별은 없을 것입니다. 애통하는 시절이 모두 끝난 뒤에는 더 이상의 수고나 고생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차, 여러분들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나 여러분 가운데 그 어떤 사람의 이름이라도 듣게 된다면, 나는 벅찬 마음을 가누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바라건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최소한 일부만이라도 그날에 함께 모여 울타리 안에서 한 목자를 따르며, 한 마음과 한 목소리로 영광스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시도다....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계 5:12-13).

 

- 『천국을 말하다』 / '생명의 말씀사' - <자료 : 산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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