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교회에 필요한 신령한 은사들

동행
3313 3 1

하나님의 사람은 설교도 잘하고 금식도 오래하고 기도와 전도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실족해 버린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후에

그에게 물으신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습니다.

   

보이는 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요일 4:20)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해주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자신만이 아닌 외부의 세계를 사랑할 힘의 근원이 됩니다.

   

성경은 거라사 지방으로 향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말씀하시고는 이내 피곤에 지치신채 배에서 잠이 드십니다. 뱃고물에 머리를 두신채 주무실 정도로 피곤하시면서도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다 저편 거라사 지방에,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죄의 사슬에 메여있던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 주님을 필요로 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하는 한 영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건너시는 도중에 제자들이 만난 큰 폭풍과 파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인 듯합니다. 모든 것을 통해 선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께서는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드러내십니다.

   

이 세상의 축복과 형통은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지만,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그리스도 가까이로 향하게 합니다.

   

어려움을 일부러 구할 필요는 없지만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 아무런 결실 없이 흘려보내서는 안됩니다. 만나는 어려움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도록 구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던 어부들이 상당수였음에도 그들의 한계상황을 벗어나 버리자 난리 법석을 피우며, 마침내 예수님께 불평을 쏟아내고 맙니다. 그들은 피곤해 주무시는 주님을 흔들어 깨우며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척하십니까?”

   

제자들은 아직도 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분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분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수 1:9, 사 41:10, 렘 1:8)

   

이들의 연약함과 믿음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이를 통해 주님은 당신이 오실 그 분,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잔잔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바람이 멎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 註 : 주님은 지금 제자들 앞에서 말씀으로 폭풍과 파도를 잠잠케 하심으로 바로 당신이 창세기에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복종하는가?’ 주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분임을 아직 믿지 못했습니다.

   

배는 마침내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들려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영혼을 주님은 즉시로 구원하셨습니다. 얼마나 급하셨는지 그가 말을 끄내기도 전에 먼저 역사하셨습니다.

   

그의 거하는 주소가 무덤이었다는 사실은 위선적이고도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모습처럼 비춰집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37)

   

주님을 대면하는 자만이 모든 불법과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시는 이의 은혜의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온전케 된 그를 통해 그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길 원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註 : 열개의 성읍이 연합한 도시, 온 마을)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막 5장)

 

   

성도가 잊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저마다 다른 어려움과 역경가운데서 영혼을 향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모두 주님을 만났습니다.

   

교회를 돌보고 세우시기 위해, 신령한 많은 은사들을 주님은 교회에 주십니다.

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은사들이 서 있는 기초와 집행되는 과정과 추구하는 방향성은 모두 13장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12장을 마치며 맺는 결론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만일 13장이 없었다면, 가장 좋은 길, 더욱 큰 은사는 14장의 대언을 향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3장이 12장의 끝부분 말씀을 받아야 하였기에 지금 그 위치(12장 바로 뒤)에 두신 것입니다.

13장은 12장에 언급된 은사들을 상당부분 인용하면서, 이러한 은사들이 있더라도 내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보다 더욱 큰 것이 사랑임을 선포하면서 13장의 막을 내립니다.

   

새로이 개척되고 성장하는 교회에는 많은 은사가 필요합니다.

지혜의 말씀들, 지식의 말씀들, 믿음, 병 고치는 선물들, 기적들 행함, 대언함, 영들 분별함, 방언들, 방언들 통역함, 돕는 것들, 다스리는 것들.....

   

교회의 유익을 위해 저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신령한 선물들을 함께 구하고 바래야 할 것입니다. (눅 11:13, 요 16:24, 마7:7,11)

   

특별히 교회가 바라고 더욱 간절히 추구해야 할 신령한 선물인 사랑의 교훈이

저희가운데 들려지고 읽혀지며 남게 되기를 구해봅니다.

신고공유스크랩

댓글 1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삭제

"교회에 필요한 신령한 은사들"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