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b)
이름은 살아 있는 생생한 관계 가운데서만 가능한 호칭입니다.
허상과 실재의 구분 역시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친구들, 자녀들, 동료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들이 나의 삶에 허상이 아닌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에 친밀한 주소에 있을 때라야 그들의 이름이 불려지며,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은 나에게 살아있는 인격적인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에 신앙이 실재가 되고 있는가의 시금석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십자가 한편의 강도가 의지하여야 할 대상으로 주의 이름을 불렀을 때,
주님이 즉각적으로 낙원을 약속하신 것은, 그 사람만을 위함이 아니며,
오늘 우리를 위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눅 23:42; 롬 10:13; 행 2:21)
만나고 대면하는 상황가운데 주님을 살아계신 실재, 인격적인 분으로 신뢰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이 땅에서 넘어지지 않는 초인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잠 24:16; 전 4:10)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들로 인해 끊임없이 넘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은 넘어질 만한 상황, 엎드러질만한 상황,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의지할 분이 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손길이 넘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며, 당신의 이름으로 인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8,9)
절망적인 상황가운데 놓여질 때, 스스로의 지혜나 의지할 다른 대상을 찾는 헛된 수고로움을 끝내고 십자가의 한 강도처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고백을 뱉어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대면하는 어렵고 곤혹스러운 상황들 가운데 주의 이름은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