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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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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우리들

 

 

D. L 무디

 

 

지속되는 활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 어떤 사람은 어느 집회에서 자기는 그 집회를 통해서 평생에 필요한 힘을 다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은 마치 단 한번의 조반으로 평생에 필요한 영양을 다 얻고 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릇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 다. 그래서 그들은 집회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집회마다 열심히 좇아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집회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한층 더 깊이 맛을 보게 해주지 못했다면 그 집회가 우리에게 준 모든 감동은 삼 개월이 못되어 다 사라질 것이다. 성경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우리의 소망은 그만큼 굳어지는 것이다. 성경을 사랑하는 때에 신앙의 퇴보를 보는 일은 적다.

 

만일 더 깊은 말씀에 접한다면 당신은 영속하는 어떤 것을 얻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이다. 시편 119편에 시편 기자는 말씀, 율법, 심판, 훈유(訓諭) 등에 의하여 하나님이 그를 살려주시기를 아홉 번이나 기록하고 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사랑을 그리스도인에게 가지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한 마디 말할 수 있다면 말씀에 접촉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 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성경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고 묻는가? 성경 연구의 중요성에 눈을 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당신을 도우실 것이다.

 

 

 

 

말씀과 일

 

말씀과 일은 건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만일 말씀뿐이고 일이 같이 하지 않았다면 식상(食傷)에 걸릴 것이다. 한편으로 일 뿐이고 말씀이 같이하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모든 종류의 과실에 빠져 선을 행한다기보다 오히려 해를 남기는데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먼저 말씀을 배우고 그 후에 일하는데 나간다면 우리는 건전하고 유용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아직 나는 성경을 연구하는 일이 없이 열매를 맺었다는 그리스도인을 본 일이 없다. 성경을 무시하고서도 일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하나님께 기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일하시는 여지가 적은 고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을 사용하실 수가 없다. 우리들은 두 날선 검보다 예리한 말씀 그 자체를 가지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곳에 많은 기도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도와 동등하게 극히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파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으며 성경 연구 및 성경 강의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하는 것이지만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듣는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말씀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에게서 듣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나는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때에 더욱 좋게 기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기의 사용법을 모르는 군대가 무슨 유익이 있을 것인가? 그와 같이 어떻게 성경을 활용할 것인가를 몰랐다면 그리스도인의 일에 종사했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을 것인가? 자기의 가지고 있는 무기에 대해서 얼마쯤의 의심을 품고 있는 병사는 전쟁에 있어 가치 없는 자이다. 지금까지 나는 성경에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일에 성공하였다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나는 이 오래된 서적에 대한 확신을 잃었기 때문에 그 일을 그치는 많은 사람을 보고 있다.

 

 

 

 

최근 구원받은 사람

 

만일 최근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용을 바란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육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처음 경험은 극히 좋으며 또한 유익한 것이며 그것을 말하는 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가 있다. 그러나 경험만을 말하고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그것은 케케묵은 무익한 것이 되며 사람들은 같은 것을 여러 번 듣게되므로 결국에 있어서는 듣기 싫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여 자기가 구원받았는가를 말하였다던 다음에 할 일은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기르는 것이다. 우리는 샘 그 자체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참 샘인 것이다. 말씀에 의해서 자기를 기른다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될 것이 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점점 은혜 안에서 성장하며 그 결과 우리의 걷는 것이나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주목하는 바가 될 것이다. 성장하는 자가 적은 것은 성경을 연구하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될 수 있는 한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사귀도록 충고한다. 나는 자기보다도 지식이 있는 사람과 사귀는 것을 기쁨으로 하고 있는데 모든 기회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장점을 그에게서 얻으려고 한다. 주의깊이 더욱 깊이 기도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며 모르는 성구가 있으면 그 뜻을 다른 사람에게 묻도록 하라. 성경이 품고 있는 위대한 진리에 통달하여 세상과 육신 및 마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적어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실망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것

 

때때로 사람은 새로운 것, 어떤 새로운 교리 어떤 새로운 생각을 바란다고 한다. 형제여 !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권태를 느껴 그것이 싫증나는 것이 되었다면 당신과 하나님과의 사귐은 벌써 깨어진 것이 다. 이전에 내가 발티모아에 있을 때 숙사 창에서 성서공회의 예배당이 보였다. 낮에는 그 색유리가 밝지 못한 어두컴컴한 색을 하고 있어 아무 매력도 나타나지 않았으나 밤이 되어 예배당 내에 불이 켜지자 말로 끌 수 없는 색채를 나타낸 것이다. 그와 같이 성경이 당신의 이해의 눈에 건축되어 당신이 성경의 각 항에 빛나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아주 새로운 것이 될 것이다. 언제인가 한 젊은 부인이 어떤 책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무 흥미도 찾을 수 없어 읽을 기분도 없었다.

 

그리고 나서 몇 달 지나 그 여자는 그 책의 저자에게 소개되어 곧 그 사람의 부인이 되었다. 그 후 그 여자는 그 책 가운데 무엇인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책에 대한 생각을 변경하는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책 가운데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 여자 자신가운데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그 여자는 저자를 알고 사랑하는데 이른 것이다. 일부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는 일이 의무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그리스도를 만물 중에서 제일 뛰어난 분임을 인식 할 때 성경은 아버지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남이 되어 끝없는 매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느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당신은 때때로 성경을 읽습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읽지 못합니다. 솔직히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나도 역시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시대에 뒤떨어진 옛 책이어서 벌써 그 전성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암흑시대에는 성경이 큰 이익을 주며 또 그 가운데는 극히 유익한 역사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현대를 위해서 쓴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며 이와 같은 옛 책이 없더라도 충분히 잘 행할 수 있다. 벌써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도록 성장했다고 이러한 말들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태양은 너무 오랫동안 비치고 있으므로 벌써 옛 것이 되어 오늘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 집을 세우는데 지금 우리들에게는 신식의 전등이 있다. 가스등도 있고 전등도 있다. 그러므로 창을 만들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그것들은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일 성경이 너무 오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집을 세우는데 있어서 창을 달지 말고 새로운 것이라는 그 전등으로 안을 비치게 하라고 충고한다.

 

 

 

 

모든 일에 적합하다

 

성경에서 위로의 말씀을 찾아 낼 수가 없다는 생활의 태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만일 당신이 번민이나 역경, 시련 중에 있다면 그 때에 대한 약속이 있다. 기쁠 때, 슬플 때, 건강할 때, 병들었을 때, 가난할 때, 부(富)할 때, 모든 인생의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 말씀 가운데에 무한한 약속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다. 어떻든 성경의 진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들어맞는 것이므로 그것은 만인의 상식에 공헌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성도의 영원한 안식'이란 책을 저술한 리처드 밭크스타는 그 청년 시대에, 주로 기적(奇蹟)의 힘을 느끼며 장년에는 성취된 예언에 큰 관심을 품으며 노경(老境)에 들어가자 자기 자신 가운데에 복음의 힘이 있었음을 보고 큰 만족을 깨달았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급한 자여 조용히 앉아서 욥과 속삭이라. 한가지 일에 통달한 자여! 모세와 베드로의 기사를 읽으라. 유약한 자여! 엘리야를 보라. 마음에 노래가 없는 자여! 다윗에게 들으라. 정치가가 된 자여 다니엘서를 읽으라. 실망과 암흑 가운데 있는 자여! 이사야서를 읽으라. 마음이 싸늘한 자여! 사랑의 사도를 가까이 하라. 신앙이 얕은 자여! 바울을 주목하라. 안일(安逸)한 자여! 야고보서를 잊지 말라. 장래의 소망이 없는 자여! 요한계시록에 의하여 약속의 땅을 알라.

 

 

 

 

큰 평안

 

시편 119편 165절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는 장애물이 없으리 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은 평안을 얻는 것이다. 성경에 근거하며 그것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을 보라. 그들은 큰 평안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지 않으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적은 고민을 당하거나 사소한 박해를 만나면 그 가지고 있는 평안을 흐리게 한다. 방해의 한 호흡에 의하여 그 평안은 곧 사라지고 만다.

 

때때로 나는 극히 적은 방해에 의하여 일부의 사람이 평안과 위로를 잃은 것을 오고 놀랜다. 중상의 말은 매우 간단히 그들을 휩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평안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것을 줄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헐어 버릴 수도 없다. 그것은 세상에서가 아니라 위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평안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부여되는 평안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당신은 성경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은 그리스도인 즉 성경에 정통하고 날마다 기도하여 깊은 명상으로써 말씀에 양육 받는 사람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항상 성장하며 항상 일하는 사람이다. 일방 쉽게 넘어지며 왜 이와 같은 환난을 당하게 되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는 결코 성경을 풀거나 그것을 배워본 일이 없는 자이다. 그와 같은 사람은 기독교를 일찍이 들어 본적이 없으며 우리들이 선언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의 명령하신 것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데지 잘못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 왔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면 현재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 빠져 있지 아니하고 또 오랫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방랑의 여행을 계속하고 세상 가운데에 파묻힌 근심스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새 생명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양육치 아니한 고로 그 굶주리고 불쌍한 영혼은 허약과 부패의 진탕에 가라앉아 쉽게 넘어지게 된 것이다.

 

한번 하나님께로 난 자는 하나님 없이 잘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나는 사 십년간 영혼에게 아무 것도 부여치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

 

나는 '영혼에게 아무 식물도 부여치 아니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일이 아니겠습니다'라고 말하였지만 이 사람은 현대의 많은 사람을 대표하고 있지 아니할까? 가련한 많은 영혼들이 기아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머지않아 죽음에 임하려는 이 육체에라도 한수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충분한 주의를 기울인다. 즉 한 시간 한 시간 무덤에 가까워지며 곧 썩어버릴 육체를 위해 하루에 세번의 식물을 부여하며 옷을 입히고 장식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살 속 사람은 말라빠져 굶주린 상태에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안내도

 

만일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자기의 갈 곳이 어디인가? 혹은 어떻게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그 여행에는 많은 지장이 생기며 안내서를 손에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여행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가를 알지 못하는 고로 그것은 안전한 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은 인생의 여행에 있어서의 안내서며 천국에의 길을 보이는 유일의 책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런고로 이 빛을 물리치지 말며 이 빛이 주는 도움을 얻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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